로마에서 활동한 영국 출신의 펠라기우스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410년 경에 ‘인간이 어떻게 구원에 합당한 자격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면서 많은 사람들이 펠라기우스의 생각에 동의했고, 나중에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가 만들어졌다. 펠라기우스는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능력을 잘 사용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의 죄는 아담에게 까지 소급해서 적용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사람이 충분히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펠라기우스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방편이 사람에게 있다고 가르쳤고, 사람은 착한 행실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에게 착한 행실이 가능하게 만든 십계명과 같은 도덕적인 기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할 뿐이고,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삶에서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펠라기우스는 생각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의 범죄로 인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펠라기우스가 말하는 것 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죄에 물들어 있는 ‘왜곡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단과 자원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즉 의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죄는 인간의 실존 속에서 선택적인 요소가 아니라 필연적인 요소이고,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펠라기우스의 생각과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에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 사이에는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논쟁은 418년에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죄에 대한 이론이 받아들여지고, 펠라기우스의 이론이 이단으로 정죄당하면서 하나님의 은총교리가 정립되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도 펠라기우스가 인간에게 있는 자율성이나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63문 답)’에 펠라기우스의 말은 틀렸다고 말한다. 구원은 오직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도 ‘하나님께서 나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내 믿음에서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성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1문 답)’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내 것으로 만들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는 그릇이라는 말이다. 즉,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하고,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신뢰이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을 오해함으로 무모하게 아무 일에서나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펠라기우스적인데, 그 이유는 그런 생각은 인간 스스로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믿음만이 살아서나 혹은 죽어서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위로의 길이기 때문에 펠라기우스가 말하는 것 같은 스스로 위로를 얻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