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주의(Evangelism)가 지배적이다. 확실히 복음주의는 비성경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복음주의는 시대적 특성을 강조하고 문화와 그 조류에 편승한다. 특히 과거의 것보다 현실에 주안점을 둔다. 개혁주의 진영에서 종교개혁시대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을 거론하면 그들은 낡아빠진 고문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황당해 한다. 옛날의 문서들이 오늘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어떤 이는 ‘오직 성경’만이 신조요 신앙고백서라고 소리친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개 이런 사람들은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들이 한 발 더 나아가면 기독교강요를 읽어보지도 않고 칼빈을 공격하기 일쑤다. 심지어 칼빈을 살인자라고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자들도 익명으로 존재한다.

현대의 복음주의는 같은 종교개혁의 후손들이면서 종교개혁의 정신과 전통과 가치들을 상실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비 진리를 거부하고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 안에서 가장 성경적인 칼빈주의의 길을 버리고 가장 현실에 부합하고 유익하다고 여기는 실용주의(pragmatism)적 노선을 택한 기독교 안의 거대한 세력이다. 실용주의는 취사선택을 하는 사상이다. 이것은 모든 효율과 유익의 기준을 인간으로 삼는다. 인본주의(humanism)의 한 형태이다. 이들의 전제는 오직 한 가지, ‘무엇이 인간에게 유익하가?’에 집중된다. 복음주의가 실용주의적인 방법을 차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성경적인 방식보다 실용적인 방식을 더 많이 택하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과거보다 현재를 바라본다. 이런 풍조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과거의 가치를 잃어버리도록 유도한다. 오늘날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지식을 얻기 위한 긍정적인 출발로 여기지 않는다. 설사 과거가 유용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거나 무언가 부족하고 덜 발전된 생각을 보여 준다는 측면일 뿐이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진리를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여겨진다.

또 실용주의는 소비주의(consumerism)와 궤를 같이한다. 소비주의는 물질주의에서 태생했다. 물질을 끊임없이 획득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이 소비주의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의 주체는 기업이다. 모든 기업은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활동을 부추긴다. 늘 새로운 소비를 양산하기 위해 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과학과 기술들을 새로운 상품개발에 쏟는다. 현대의 소비주의자들은 기업의 소비전략의 노예들이다. 그래서 기업이 시장에 내 놓은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모든 노동을 제공하고 노동의 대가로 얻은 임금을 새로운 것의 획득을 위해 소비한다. 이들에게 과거의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 그대로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에 불과하다.

칼 트루먼(K. Trueman)은 소비주의에 대해 우리보다 더 경계심을 가지고 대한다. 그에 의하면 소비주의는 현재에는 없지만 미래에 획득할 수 있는 무언가로 삶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영업 전략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TV를 켤 때마다 쏟아지는 광고들은 다양한 상품들을 선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모두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당신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무언가 다른 것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 ‘계획적으로 의도하는 진부화’(planned and built-in obsolescence)로 불린다. 이 전략에 의해 기업은 계속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심리를 부추긴다. 만일 어떤 기업이 A라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는데 제품의 사용기간이 100년이라고 한다면 그 기업은 10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 뻔하다. 소비시장에 나오는 제품이 소비자의 손에 판매되어지는 바로 그 순간 해당 기업의 공장에는 기존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또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 하나의 생산 시스템이다. 이것은 하나의 큰 소비 사이클을 형성한다. 새것이 나오는 순간 옛것은 진부해진다. 결국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상품을 고대하고 소비한다. 이른바 ‘새것증후군’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기업전략과 문화를 기독교 복음의 전파에 적극 활용한다. 소비자 심리에 발을 맞추는 복음전략이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될 만한 예비자들에게 접근할 때 기업의 소비전략을 차용한다. 기독교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입맛에 딱 맞는 종교라고 선전한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손에 들고는 가지만 그것을 그들 앞에 자랑스럽게 꺼내지 못한다. 늘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사람들의 요구사항이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인다. 영혼구원은 소비자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대신 상대방이 성경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그와 계속 대화하는 것으로 복음전파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에게 상대를 향해 ‘회개하라’고 선포할 것을 주문하는 것은 엄청난 결례요, 가장 악질적인 복음전파의 방식이라고 화를 낸다.

복음주의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인본주의(humanism)와 종교다원주의(pluralism)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복음주의는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부름 받은 소명의 목적과 사명의식을 버리고 사람의 입맛에 맞는 기독교로 개조했다. 과거의 전통과 지침들을 현시대에 맞게 뜯어고치는 일을 과감하게 결행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기독교회의 기존의 규정이나 전통들, 예를 들어 설교를 길게 한다든지, 십일조를 강조한다든지, 예배음악에 제한을 둔다든지, 일일이 심방을 하여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간섭한다든지 등을 시대 조류와 문화적 특성들에 맞도록 고쳤다.다시 말해 청중이 원하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거리 전도 혹은 타종교인들에 대한 복음전파 등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위를 중단했다. 그러한 행위는 상호존중과 평화를 깨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각자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독선적인 행위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렇게 복음주의는 각자의 주장을 용인하다보니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진리상대주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타종교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주장을 용인한다. 세상과의 화해와 종교간 평화를 위해 기독교가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만이 진리를 보유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종교는 동일한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고 신앙일 뿐이다. 당연히 기독교는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서로 내가 옳다고 주장하면 그것을 인정해야만 평화가 유지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를 가진 단체가 WCC이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본주의와 평화주의,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는 자들이다. 기독교적 자유주의자들과 알미니안들과 복음주의자들이 한 곳에 어우러진 곳이 WCC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믿지 않는다.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록들은 하나의 신화이며 신앙을 위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각색된 이야기로 치부한다. 이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당연히 성육신한 바 없고 부활한 적이 없다. 그런 이야기들은 예수를 추종하는 광신자들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생각한다. 복음주의자들은 WCC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이런 자들과 손을 잡았다. 그곳으로 가지 말라는 개혁주의 진영의 호소에 우리가 들어가서 저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그러나 아직 생환한 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였을 것이다. 생전의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은 개혁주의와 로마카톨릭, 알미니안주의, 그리고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가 복음전파사역을 같이 할 수 없는 이유를 정확히 분석한 바 있다.

기독교는 성경이 생명이다. 성경의 내용은 케케묵은 과거의 이야기들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는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이며 지금도 구원을 위해 필요한 복음이며, 여전히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성경은 절대적으로 역사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어느새 성경이 위태로운 신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책이 되었다. 성경이 절대적인 신앙과 삶의 절대적 지침으로서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니라 생각하기 나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성경을 공격하는 이들은 성경을 절대적인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조롱한다.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에 언제까지 옛 이야기들을 붙잡고 살아갈 것이냐고 비아냥거린다.

이러한 때 성경을 지키고 성경대로 신앙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주의 택하심으로 부름 받은 백성들이 다시 한 번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쳐야 할 때이다. 이것만이 기독교회가 세상의 높은 파고에도 무너지지 않고 승리하는 비결이며, 세상에게 참된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방책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일을 수행할 것인가? 그것은 오직 참된 성경주의자들이요 성경적인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험로를 자원하며 걷는 ‘칼빈주의자들'에게 주어졌다. 아멘.

최더함 목사(아리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