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골 칼럼]형만 한 아우

‘목사님! 큰아들이 아파서 입원했어요. 어느 병원에요? 모르겠네요.’ 식판을 들고 지나며 권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일 저녁, 병원을 확인하고 혼자 찾아 갔다. ‘목사님! 호흡하기 곤란하여 응급실로 들어 왔습니다. 심근 경색과 심장 판막증 진단을 받고 수술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연단을 끝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되어 주의 일 하겠습니다.’ 병실에 들어서자 먼저 말씀하셨다. 자연스럽게 그 분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앞에서 응대하였다. 지식인이라 시대를 향한 바른 말을 힘 있게 하셨는데 행동이 받쳐 주지 못한 삶이 아쉬웠다. 머리에 손을 얹어 주님 치유하시길 간구하고 봉투를 전했다.

사실 금년 들어 교회 출석을 등한히 여겨 홀로 문병하였다. 종종 심방하여 권면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려운 생활에 일자리를 소개했지만 주민증이 말소된 상태였다. 평소에 병색이 있어 수급자 신청을 권해도 거절하셨다. 몸이 아프면 한의원에서 침 맞는 일이 전부였다. 팔순 지난 권사님께 용돈 타서 쓴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서울 처자식과 원만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어머니를 의지한 모양이다. 입원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찾아 온 사람은 서울의 두 여동생이었다. 이틀간 병상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돌봤다. 전복죽, 낙지죽, 오리고기로 섬겼다.

사흘 후에 궁금하여 전화를 드렸다. 힘겹게 받으며 ‘목사님! 한번 다녀가시지요.’ 바로 찾아 갔다. 두 간호사가 기저귀를 들고 커튼으로 가렸다. ‘보호자 언제 오세요.’ 엿 들었다. 남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는 채변했는데 화장실을 못가고 두 번이나 설사를 했단다. 얼굴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음식 씹을 힘이 없어 점심을 거른 상태였다. 밥을 먹고 견뎌야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혼자 투병한 흔적뿐이었다. 수술비가 부담되어 사회 사업부 지원 요청을 부탁했다. 하지만 두 아들과 딸이 괜찮은 직장에 근무해서 어려웠다. 또 두 달 전, 여동생이 보험 가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선은 간병인이 필요하여 광주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병원으로 오는 중이었다. 동생이 도착하여 면도와 샤워를 시키며 정신이 들게 하였다. 전복죽을 사다 드렸지만 참기름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여 미네랄이 많은 홍시 감으로 기력을 회복시켰다.

막내 동생이 전한 말이다. <목사님! 형님이 수술 준비를 위해 체중 줄이는 투약에 보대끼며 입맛을 잃은 모양입니다. 심장 압박을 덜기 위해 의무적으로 살을 빼야 한답니다. 문제는 수술 이후입니다. 다행히 혈압, 당뇨가 없어 긍정적입니다. 현재 소변 양과 심장 박동은 정상입니다. 심장 판막증으로 허파로 피가 역류되어 혈전 현상을 만들고 있지만 혈관은 깨끗하여 뇌졸중이나 급성 심장병을 일으킬 확률은 없습니다. 수술비용이 얼마가 나오든 3분의 1를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그 마음 가졌을 때 이틀 만에 상당한 투자 수익을 냈습니다. 나머지 병원비는 형제들을 설득하여 조카들과 십시일반으로 마련하겠습니다. 형님은 4차원적인 삶을 사는 분이지만 조카들은 명석하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누이들도 원래 잔정이 많고 좋은 분들이라 자랑하고 싶습니다. 단지 세 명의 조카들이 ‘아빠가 우리에게 뭐 해 준 것이 있느냐’는 식이라 만남을 거절해 어렵습니다. 아빠가 과거에 도움을 안 준 일에 방관합니다. 저도 솔직히 미운 형님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선 것은 천륜을 저버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조카들에게 그렇게 문자 보냈습니다. 목사님! 난 성질이 급하지만 어려울 때 침착합니다. 또 기다려 줍니다. 하지만 조카들이 나를 폭발하게 하면 빈 관 10개를 만들어 회사와 출석교회까지 보낼 것입니다. 그들이 잘 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토요일에 3남매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면 응어리를 풀어 줄 생각입니다. 형님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도록 말하겠습니다. 어째든 아들, 딸 결혼식 때 아빠가 참석하여 축하하고 함께 사진 찍어 준 것도 큰일 했습니다. 사람이 잘 못 되었을 때 찾아 봐야 바른 도리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 조카들보다 형제들이 나서서 먼저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가볍습니다. 목사님! 병원 찾아와서 격려와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막내 동생이 형님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웠다. 형제들이 권사님 닮아 입담이 다 좋으셨다.

병원을 나서며 배웠다. 머리 좋은 것이 맘 좋은 것만 못하고 맘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며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했다. 관찰하기보다 정이 낫고, 정보다 실천이, 실천보다는 동일한 입장이 관계 회복의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사는 사람이 많다. 발보다는 손, 손보다 마음, 마음보다 머리가 좋기를 바라고 있다. 항상 남이 나 같은 입장이길 바라기에 부엌에 며느리와 방에 시어머니의 마음이다. 하지만 막내 동생과 같은 입장을 한다면 꼬인 인간관계 회복의 길이 열리리라.

이상래 목사(광주신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