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에 한(漢)의 유방(劉邦)과 초(楚)의 항우 사이에 천하를 둘러싼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유방에게 패한 항우는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장강 기슭에 도착해서는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했다. 이때 오강에 사는 정장(亭長)이라는 사람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강동(江東)은 땅이 넓고, 백성이 많아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지금 건너 대업을 이루옵소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항우가 웃으면서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내가 강동을 떠나 서쪽으로 갈 때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하였는데, 설사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나를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面目)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5년을 타고 다닌 말을 정장에게 주었고,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이 데리고 있었지만 적군이 된 부하를 위해 자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정장의 말은 항우가 천하를 얻기를 원하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강동으로 피신해 힘을 키우고 모아 다시 천하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면 된다는 말이고, 항우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함께 했던 젊은이들이 모두 죽었는데 그들의 고향으로 가서 다시 천하를 얻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이었다. 이때 항우가 한 말, ‘면목(面目)’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말로 ‘염치(廉恥)’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천하를 얻으려 군사를 일으킨 항우이지만, 천하를 얻겠다는 명분이 염치,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보다 앞서지 못했다.

명분만이 너무 강조될 때 나오는 문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명분만이 강조되면,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바른 삶’이 왜곡돼도 괜찮다는 생각, 즉 염치없는 행동이나 생각들이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실한 명분이다. 그런데 때로 교회 건축이라는 명분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있는 반대의 목소리를 적당히 외면해도 되고, 국가에서 정한 법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런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교회를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정죄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는 염치없는, 즉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도 당연하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명분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염치있는 삶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6)’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빛으로서 또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착한 행실’을 통해 모든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삶이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원리이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염치없는 모습을 가질 때, 즉 소금의 기능을 잃은 교회와 목사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염치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했으면 한다.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