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골 칼럼]심부름꾼 노릇

아침마다 전대 운동장을 가면 힘이 난다. 월요일 운동하고 큰샘 이발소로 갔다. 3년 전, 아내가 소개한 모범 업소로 가위질을 잘한 곳이다. 화순, 담양에서 찾은 단골손님으로 항상 분빈다. 토요일은 더 많아 주일 준비 관계로 이발하기 부담스럽다. 얼굴 면도는 안 하기에 요금이 싸다. 자전거를 타고 구청 앞으로 향했다. 빵 굽는 냄새가 코를 스쳐 파리바게트로 들어갔다. 막 구은 빵을 봉지에 담아 늘 푸른 요양원 계신 두 할머니를 찾았다. 조반 드시고 쉬는 시간이었다. ‘뭐 할라고 이런 것 사 오세요.’ 하지만 기가 사는 눈치였다. 아픈 눈을 맨손으로 닦는 정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침대 앞에 존함이 적힌 보조 지팡이가 보였다. 화장실 출입할 정도로 하체에 힘을 받아 감사했다. 요양원 직원으로 섬긴 집사님이 뒤따라 왔다. ‘목사님! 청년이시네요.’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 짧은 머리 스타일을 보고 한 반가운 목소리였다. 한 동안 이단에 속한 줄 알고 인연 끊었는데 오해가 풀렸다. 김 장로님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종종 만난다’며 좋은 분이라 칭찬하셨다. 집사님은 정 할머니께 운동을 권해도 ‘앉아만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도 잘 부탁 드렸다.

오전에 창고 헌책을 정리하여 고물상에 넘겼다. 우체국으로 가서 축하 우편환 신청서를 작성하여 내 밀었다. 여직원이 ‘왜 11만원 보내세요?’ ‘예, 만원을 더 받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다시 나와 고물상 근처로 갔다. 열흘 전, 빻아 두라 맡겨 놓은 고추를 찾아야 하는데 지나쳤다. 아침에 아내가 동원 참치 대리점 심부름과 함께 부탁한 일이였다. 메모 해 둬도 왜? 이렇게 잊음이 심한지 모르겠다. 방앗간에 들렸더니 사장님이 반기셨다. 조금 덜 꼬들꼬들해 빻은 고추라 ‘평상에서 늘 뭉겠노라’ 며 삯을 깎아 주셨다. 감사드리며 그 옆 할인 마트에서 막내 야식으로 끓여 줄 라면을 샀다. S님은 시립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넘었다. 폐쇄 병동이라 활동이 제한되었다. 운동장을 못나갔다. 산책 시간도 보호자가 불허하고 면회까지 금지 시켰다. ‘피자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계속 전화하지만 괘씸죄로 무반응이었다. ‘답답해 견딜 수 없다’며 공중전화로 날 찾았다. 극동방송 들을 수 있도록 ‘휴대용 라디오를 구입해 달라’고 했다. 바로 어머니와 통화하고 방송국에 ‘만나오 라디오’를 신청하여 푸른 병동으로 보냈다. 오랜만에 성 집사님께서 방문하셨다. 부친 묘 이장 서류 만들어 오는 길에 수박을 들고 오셨다. 어머니 권사님의 근황과 어려운 가정사를 들었다. 지난 달, 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동생들 전도 문제 놓고 말씀을 나눴다. 기회 주워진 때, 전도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기도 부탁하고 가셨다.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됨을 확인해 드리고 싶었다.

경균이 동생 전도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에 들렸다. 경균이가 언어 소통은 어려워도 이해력은 빨랐다. 다시 찾아가 극동방송을 듣도록 컴퓨터 즐겨 찾기를 해 줬다. 또 대한 성서공회 사이트에서 성경 듣기를 반복케 했다. 형제와 자장면 집으로 가서 곱빼기를 주문해 먹었다. 이들이 5년 전, 김열자 권찰에게 소개 받아 기도한 가정임을 확인하고 놀랐다. 그 집을 들어 갈 때마다 남자 셋 사는 특유의 향기가 났다. 가사 도우미가 매일 방문하여 빨래, 청소, 설거지를 깨끗케 해도 그렇다. 다음 날 새벽 말씀에 향유 옥합을 깨서 예수님께 부은 여인을 묵상하였다. 주님께서 ‘너도 그렇게 좋은 일 해 봤냐?’고 물으신 것 같았다. 3년 전, 지인이 유럽 여행 다녀오면서 선물한 향수를 아까워 못 쓰고 서재 실에 둔 것이 보였다. 내가 씀이 사치라는 생각에 경균이 몫으로 전달하였다.

광복절 날, 남전도회 주관으로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가게 되었다. 차량 점검(1만키로)을 위해 카센터에 들렸다. 사장님의 손님 대하는 친절에 놀랐다. 휠터, 오일 교환 후 설명과 카드 결제를 천원 단위로 끊으셨다. 덕분에 편한 여행이었다. 장년 16명이 두 차에 나눠 탔다. 이번 준비는 신 집사님이 전부 하셨다. 차 안에서 나눈 김밥은 입에 당기였다. 심심치 않게 ‘뻥이오’와 ‘팝콘’을 주셨다. 완도 대교 건너 회 센터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완도방주 교회 목사님, 사모님의 영접과 배려가 컸다. 신지도는 구름 낀 날씨였지만 피서객이 많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를 빌리고 주변에 돗자리를 폈다. 절반은 바닷물에서 나머지는 딱 트인 푸른 바다를 보며 쉬셨다. 오후에 찰밥을 내 놓았다. 새로 담은 김치를 손으로 찢어 감칠 맛나게 먹었다. 남은 찰밥은 봉지에 담아 나눴다. 포도, 복숭아, 매실, 음료수가 넘쳤다. 신 집사님의 큰 손은 자연이 주는 신선함과 동행한 분들의 넉넉한 마음을 덮쳤다. 모두가 즐기는 환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난 자주 모신 심부름꾼 노릇하고 싶었다.

이상래 목사(광주신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