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나 들 그리고 길거리에 이름 모를 꽃들이 있다. 장미나 백합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길거리 곳곳에 널려있는 이 꽃들을 흔히 야생화라고 부른다. 1㎝도 안 되는 작은 꽃도 누군가의 카메라 렌즈로 찍힌 모습은 흔히 알고 있는 크고 화려한 꽃보다 더 화려하고 예쁘다. 그런 꽃들을 찾아 그렇게 작은 꽃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리는 사람에게 야생화는 ‘꽃’으로서의 온전한 가치를 가지지만, 그냥 길가나 들녘에 널려있는 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꽃도 보이지 않는 별로 쓸모없는 풀일 뿐이다. 그래서 서정주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나보다. 무리진 채 한 송이 한 송이의 가치가 무시되는 작은 꽃이지만, 그것을 꽃으로 인정함으로 꽃무리를 가능하게 한 ‘꽃’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자연을 깨운다. 길거리에 무리져 핀 꽃들 가운에 피어있는 어느 한 송이의 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그냥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에 혹은 길거리를 방황하는 길고양이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심지어 가난한 만화가의 방을 돌아다니는 쥐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세기1:19)’라는 말씀은 자연을 깨워 의미를 주는 사람의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한다.

하나님도 사람에게 의미를 주셨다. 특별히 노아의 홍수 이후에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심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의미를 가진 사람인 것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12:1)’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아내를 누이라고 말함으로 목숨을 부지하려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인해 애굽의 왕에게 힘있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 거처없이 세상을 떠도는 삶을 살았지만, 거처있는 사람들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택함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규정하는 율법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부르셨음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가 그 새끼를 품고 나르듯이 애굽에서 불러내셨고, 민족을 이루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바울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에베소서2:8)’이루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예수님은‘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요한복음15:16)’다고 말씀하신다. 바울이 말처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에베소서2:8)’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요한은‘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한복음1:12)’다고 말한다. 나를 지으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 은혜는 ‘나’에게 의미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출발점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나의 나됨을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사람들에게 버려지거나 무관심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는 나를 불러 ‘나’에게 의미를 주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의’를 목말라하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다.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