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숨죽이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렸고, 자신들의 신분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를 두려워했지만, ‘땅위의 박해와 땅 아래의 기도’로 이루어진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각한 박해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였던 카타콤이 만들어졌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약 250여 년 동안 온갖 박해를 받았고,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의지할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었다.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빌 2:6-8)’심으로 스스로 ‘갑’에서 ‘을’이 되신 것처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인 면으로 보면 ‘갑’의 자리에서 ‘을’의 자리로 옮겨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을’의 자리에 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이루었고, ‘을’의 자리에서 참된 진리를 지킬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콘스탄티누스 왕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사회적인 ‘갑’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갑이 된 교회는 교회로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자리로 스스로 옮겨갔다. 천년 동안의 중세 시대의 특징은 사람의 이성이 종교적 도그마로 마비됨으로 교회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때문에 ‘종교’적이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거 ‘을’일 때 자신들에게 ‘갑’이었던 사람들이 ‘을’이었던 자신들에게 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갑’으로서의 교회는 부패했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을’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을 통해 종교개혁을 일으키셨다. ‘갑’의 자리에 있던 로마 카돌릭은 ‘을’의 자리에 있는 개혁교회를 핍박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로마카돌릭의‘갑’의 횡포를 이겨냈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전파되면서 만들어진 교회는 또 다시 ‘갑’의 모습을 가졌고, 다시 ‘갑’이 된 ‘교회’는 양육강식의 시대 속에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착취하는 국가의 힘을 의지해서 복음을 식민지 땅에 심는 ‘갑’의 방법을 취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음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지배했던 나라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을’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복음은 전파되었고,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폭발적인 부흥의 시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우리는 거대한 ‘갑’이 되어버린 몇몇 교회들을 본다. 그런 교회들은 말구유에 낮고 초라하게 오신 예수님께 황금색을 칠하기 시작했고,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발걸음마다 화려하게 치장된 교회당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 교회들은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군사들에게 조롱당하신 예수님께 황금 면류관을 씌우며 그렇게도 참혹했고 처참한 십자가를 현란한 빛으로 바꾸면서 ‘갑’으로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갑질’을 한다. 즉,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갑’으로 ‘갑’의 자리에서 세상을 대하는 데 있다.‘갑’인 세상이 ‘을’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할 때 그리스도인들은‘을’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갑’인 세상을 대했고, ‘을’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바울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라고 말하는 이유는 ‘을’의 자리에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려고 하는 ‘예수님 앞에서 을’인 사람의 고백이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세상의 ‘갑’으로 세상을 섬기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교회로서의 맛을 잃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었던 때는 교회가 스스로 ‘을’의 자리에 있을 때였다. 지금처럼 ‘갑’으로 있으려하면 할수록 교회는 중세 로마 카돌릭 교회처럼 세상에 던져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하자.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