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채색을 위해서는 흰색의 종이나 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색을 칠하기 위해서 흰색이라는 본질적인 바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바탕은 형식을 제한한다. 집의 구조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동선과 생활양식을 결정한다. 여기서 집의 형태는 삶을 위한 바탕이 되고 삶의 스타일은 형식이 된다. 다시 말한다면, 본질적인 바탕이 세계관이라면, 채색은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드러나는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색의 아름다움이나 그림의 구도의 치밀함은 보아도 채색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인 흰색의 천이나 종이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삶의 드러남에 관심을 두고, 그 삶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 가치와 세계관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별 다름이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바탕 보다는 형식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어떻게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대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들은 색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탕이 갖고 있는 여백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현란한 색이 우리의 삶을 공격한다. 바탕을 근거로 나오는 색의 아름다움보다는 색 그 자체가 던지는 자극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자기가 원하는 색을 위해서는 어떤 바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맘몬의 색을 칠하는 불경건을 넘어, 맘몬적인 삶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덧칠하는 불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색에 열광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문제는 언제나 본질을 망각하는데 있다. 여백을 잊으며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것이다. 여백은 본질에서 나온다. 여백은 색을 다 칠하고 남은 빈 공간이 아니라 도리어 색을 색되게 만들 수 있는 본질의 일부이다. 그러나 색에 대한 집착스런 관심은 여백의 존재를 무시하고, 여백을 통해 나타나야 하는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색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된다. 더욱이 ‘보이는 색’의 가치를 돈으로 측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 여백의 의미를 더욱 축소시켰다. 사람들은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구입하게 되고, 그 색의 바탕이나 색을 그리기 위한 장인의 노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요즈음 자꾸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갑질' 같은 말은 채색에만 관심을 둔 현대인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사람의 가치’라는 여백을 생각하지 않고 ‘가진 것이 무엇인가?‘라며 색을 강조한 병폐이다. 편리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의 가치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지, 돈 그 자체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닌데, 자꾸만 주객이 전도되어 가치들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돈이 가치의 중심에 서있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남편의 사업을 위해 결혼 패물을 파는 아낙의 마음과 패물의 값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있다. 문제는 아낙의 마음보다 패물의 값이 얼마인가에 주목하게 하는 채색위주의 사고방식에 있다.

신앙도 역시 바탕이 중요하다. 교회가 종탑을 높게 세우고, 화려한 건물을 예배당으로 지음으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새 침투한 채색 위주의 사고방식은 자꾸만 교회의 본질을 바꾸려한다. 교회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가 되길 원하고, 교회가 생계의 수단을 제공하는 장사하는 집의 모습을 갖게 되고, 교회에서의 멧세지가 자꾸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본질을 보여주는 여백을 잊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아닐까? 신앙과 교회의 바탕은 그리스도와 말씀인데, 그리스도와 말씀을 보이지 않게, 즉, 여백은 보이지 않게 칠해진 색깔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2019년이 다가온다. 2019년에는 우리의 색보다는 우리의 색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이라는 여백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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