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정당하신가?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임진남 목사)
1. 서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로 시작하는 전도 방식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한국 교회 내에서 이미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대부분의 경우 ‘사랑의 하나님’을 부르며 그 기도를 시작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죄를 지으려는 문턱에서 망설일 때나 혹은 이미 죄를 짓고 난 후에라도 ‘이 정도쯤이야, 사랑의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안위한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사랑 그 자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만을 강조하고 전한다면 그것은 진리의 한 면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 곧 중생하지 못한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기 때문이다.(롬 1:18)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진노하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믿지 않기에 죄를 짓기에 담대하다. 죄를 지을 때 참회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이와 같은 죄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난한다. 과연 이들의 항변과 같이,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그 정당성을 가지고 계시는가? 가지고 계시다면 그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었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문제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수많은 학설과 이론들을 다 다루지 않겠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어떠한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2. 본론
1). 출생 시 인간의 상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선하게 창조하시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분의 계명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의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범죄하고 말았다. 그 후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더 이상 범죄하기 이전의 아담과 동일하게 무죄한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아담의 죄책을 함께 지게 되었으며, 죄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그 본성적 내면에 악을 가지고 태어나는 비참함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진 자는 결과적으로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인 동시에 우리 모든 인류의 경험이 증거하는 진리이다. 이러한 죄책과 함께 자연적 인간의 부패한 본성, 곧 죄악된 상태와 조건을 신학적 용어로 원죄(peccatum originale)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구성 요소에 속하는 것이므로 갓 태어난 영아라 할지라도 결코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원죄는 아담의 첫 범죄의 결과일 뿐 아니라 그 후의 모든 인류가 스스로 자범죄를 짓게 되는 뿌리 또는 기원이기도 하다.
2).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
우리가 원죄 가운데 태어난다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 전적인 부패와 무능 가운데 태어난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적인 부패란 우리 인간의 마음(heart)을 구성하고 있는 지(知)․정(情)․의(意)가 첫 사람 아담의 모습과는 달리 심히 왜곡되고 어그러져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지식이 왜곡되었기에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상을 하나님이라 하며, 감정의 왜곡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싫어하고 오히려 미워하시는 것을 마음에 기뻐하게 되었다. 또한 의지가 구부러져 있으므로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뜻에 반(反)하여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인간은 동시에 전적인 무능함 가운데 있게 되었다. 전적인 무능함이라 함은 인간이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무력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보다는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영적인 선을 행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무능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3).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전적인 부패와 무능 가운데서 태어나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인다. 아무 것도 모르고 도덕적으로나 의지적으로 범죄하지 않은 순수한 아기는 그야말로 천사와 같다. 만일 그 아이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신다고 말하면 그런 하나님은 너무나 잔인하고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이라고 모두들 분을 내며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기들에게조차 진노하고 계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아기들이 실제적으로 죽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음은 우리 인간의 처음 창조 가운데 확정된 형태가 아니었으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비록 갓 태어난 아기가 스스로 범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다(롬 5:14)는 사실을 볼 때, 그 아기들도 결코 죄와 무관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항상 임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서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가운데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 자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상태 가운데서 태어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그 비참하고 무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는가? 할 수도 없는 일을 명령하시고 지킬 능력을 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오히려 우리 인간에게 비난받아야 하지 않는가? 이와 상황은 좀 다르지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롬 3:5b)고 사도 바울도 당시 사람들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죄인을 향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
4). 하나님의 진노는 정당한가?
일단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불의하실 수 없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대답하였지만, 위의 두 문제에 관하여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다. 첫째로, 갓 태어나는 아기까지도 죄의 종으로서 또한 죄책을 진 자로서 태어나는 이유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아담의 범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왜 그와 같이 하셨는지 우리에게 많은 부분 감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류를 위해 두 대표자를 세우셨다는 것은 명백하다. 첫 사람 아담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의 순종 여부에 따라 그 이후로 태어나는 육체적인 모든 후손들의 운명을 결정하셨다. 한편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 안에 있게 하셨다. 이러한 대표의 원리에 의해서 자연적 출생 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아담의 범죄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게 되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이기에 결코 불의한 것이 아니다. 만일 이 대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지 않으셨다면 죄인 된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길도 전혀 없을 뻔하였다.
우리가 태어날 때 아담의 죄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태어나는 것은 대표의 원리뿐 아니라 연합의 원리도 작용한다. 이것은 너무나 신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합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이해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와 같은 연합이 있었다는 것을 배우며 믿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의 자연적 이성으로는 영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불합리하고 잔인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불의하시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전적인 부패와 무능 가운데서 태어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참되신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할 수도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또한 진노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능력을 부여받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 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케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분께 순종할 능력을 사람들에게 부여하지 않으시고도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라고 요구할 완벽한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능력을 마땅히 베풀어야 하는 의무가 하나도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를 낸 것(전 7:29)이며, 하나님께서는 죄의 조성자가 결코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죄인을 그 책임의 분량과 척도에 따라 취급하시는 것이지 그의 죄악된 무능성의 척도에 따라서 취급하시지 않으신다. 수천억의 빚을 지고서 파산한 채무자에게 채권자로서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정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을 향해 진노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영적인 무능함 자체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도덕적인 죄이고 악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죄는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연약성, 실수, 불완전성과 같은 수동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그의 율법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이 태어나는 사람을 향해 팔이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팔의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 가운데 태어났고 또한 그것은 결코 도덕적인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아무리 전적으로 무능한 가운데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그분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 구조적인 본성, 즉 이성, 양심, 선택의 자유, 자발적인 감정과 행위 등은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 안에 있지 않은 인간이 그 자신의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끊임없이 반역하고 미워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다는 증거는, 이와 같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상태에 있어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대적하는 죄인들에게조차도 계속해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악인과 불의한 자들에게도 그분의 백성들과 동일하게 해를 비취시고 비를 내리시며(마 5:45)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시고 생명을 유지시키신다. 그들의 죄 값대로 사람을 다루신다면 단 한 순간이라도 이 땅에 존재할 죄인이 없겠으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애 3:22) 곧바로 진멸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오래 참으시며 선을 베푸신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인간 안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새겨 놓으셨을 뿐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이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심으로 그 누구도 하나님께 핑계치 못하게 하셨다.(롬 1:19-20) 비록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죄인에게 베푸시지 않으면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반 은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비난받지 않으며 오히려 찬양을 받으셔야만 한다.
3. 결론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책을 졌을 뿐 아니라 전적인 부패와 무능 가운데서 태어나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신다. 이것은 갓 태어난 영아들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죄의 세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우며 우리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눈이 열려 죄의 진정한 실체를 보게 될 때 소스라치며 놀라며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와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자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와 같이 죄의 극악함과 무서운 독성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소망아 없음을 깨달으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만이 그러한 죄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찬양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바르게 세워질 때만이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정당하심을 밝혔지만 불신자들은 이와 같은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쏠 것이다. 주님의 증거를 받는 자만이, 성령의 내적 증거로 인치 심을 받는 자만이 하나님을 참되시다 할 것이다.(요 3:33) 어떤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스스로 당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며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지극한 영광중에 거하시는 분이다. 어느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을 불의하시다 힐난하겠는가? 더군다나 그분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구원자가 되시며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그분께 그저 감사하고 찬양할 뿐이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5-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