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다. 계시록의 기록 연대는 성경해석을 위한 중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 다수의 학자들은 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제시하면서 대개 외부적인 정황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내적 증거와 함께 구속사적 의미 가운데서 기록 연대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을 구속사를 배경으로 한 교회론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1. 늦은 저작설(AD 90년대 이후)

학자들 가운데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도미티안 황제 시대로 보는 이들이 많다(주 1: Charles H. Talbert, The Apocalypse, 묵시록, 서울: 에스라서원, 2001, pp. 21, 22; 고대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로 4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①칼리굴라(Caligula, AD 37-41)와 클라우디우스(Claudius, AD 41-54) 시대(Epiphanius 51.12.32-33); ②네로(Nero, AD 54-68) 시대(Syriac versions); ③도미티안(Domitian, AD 81-96) 시대 말기(Ireaneus, Against Heresies5.30.3); ④드라잔(Trajan, AD 98-117) 시대(Theophylact on Matt.20:22; Dorotheus) 등이다. 이 가운데 이레네우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Wake Forest University의 C. H. Talbert 교수는 이중 70년대 이전 기록설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대개 도미티안 황제의 사망 직전인 AD 95년경에 계시록이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주 2 : C. 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John's Revelation, 요한계시록, 배영철 역, 서울: 백합출판사, 1981, p. 7; Michael Wilcock, I saw Heaven Opened,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이종일 옮김, 서울: 기독지혜사, 1988, p. 18; D. Guthrir, New Testament Introduction, Inter-Varsity Press, 1970, pp. 949-961; Richard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Study on the Book of Revelation, 예언의 절정-요한계시록 연구, 최흥진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2, p. 12; G. E. Ladd, 요한계시록 주석, 이남종 역, 서울: 크리스챤서적, 1990, pp. 14-16.).

도미티안 시대에 계시록이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이레네우스(AD 180)로부터 시작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 200, 주 3 : T. Randell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AD 70년 이전 요한계시록 기록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클레멘트가 ‘폭군의 죽음 후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고 한 말에서 ‘폭군’이란 네로황제를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풀핏 성경주석, 요한계시록, 서론, 대구: 보문출판사, 1982. p. 14). ), 오리겐(AD 254), 빅토리아누스(3C 말, 주 4 : 3세기 말의 빅토리아누스(Victorianus)는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의 명령으로 밧모 섬의 탄광에서 일하는 죄수였는데 그는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제롬,(주 5 : 제롬(Jerome)은 ‘네로황제의 박해가 있는지 14년 후에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은 나중 거기서 계시록을 썼다’고 기록했다.), 교회사가(敎會史家)인 유세비우스(AD 325)에 연결되는 견해로써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주장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대한 중요한 배경은 성경의 내적 증거가 아니라 1세기 말 로마제국에 의해 발생한 ‘기독교 박해’와 관련된 종교, 정치적 상황이다. 로마제국의 도미티안 황제 치하(AD 81-96)에서 기독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그 전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정도의 극심한 박해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미티안 황제가 등극하면서 황제숭배를 로마제국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라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는 내용의 박해를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 박해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기독교 박해사건과 일반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이해하려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았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AD 40년대 후반에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축출하기 위한 칙령을 내리게 된다.(주 7 : 사도행전 18장에는 Claudius의 칙령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거기에서 그(바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행 18:2, 표준새번역). 이는 AD 40년대 후반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다른 문헌들을 보게 되면, 여기의 ‘유대인’은 ‘그리스도인’(Chrestus)으로 표기되고 있다(F. F. Bruce, Men and Movements in the Primitive Church, 예수님의 수제자들, 이광호 역, 서울: CLC, 1986. pp. 71-73).

그리고 네로황제 때는 기독교에 대한 대박해가 일어나게 된다(주 8 : Domitian황제 때의 대박해를 요한계시록의 박해와 연관짓는 이유는 Claudius황제와 Nero황제 때의 대박해란 로마시와 그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정치적 박해였으며,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에 대한 경배를 억압하고 황제숭배에 참여하도록 종교적으로 강제한 자는 Domitian황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AD 64년의 로마 대화재사건과 기독교인들을 연루시킴으로써 일어난 기독교 박해는 끔찍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AD 90년대에 계시록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도미티안 황제 이전의 박해는 전 로마제국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시(市)를 중심으로 일어난 지역적인 박해였다며 계시록에 나타나는 박해가 그 이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계시록이 예루살렘 성전파괴보다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그와 같은 정황을 근거로 하여 대박해가 행해진 도미티안 황제의 통치기간인 AD 81년에서 96년 사이를 기록 연대로 보고 있다. 그 중에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도미티안 황제의 말기였던 90년대 중반으로 본다.

그렇지만 그러한 주장은 하나의 교회사적 전통일 뿐 성경의 내적인 증거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도미티안 시대에 계시록이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들은 사도교회 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 있었던 이레네우스의 견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주 9 : C. M. Pate, Ed., Four Views on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Michigan, 1998, footnote, 24;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90년대 이후로 보는 견해의 전승은 이레네우스의 “이단을 반박함”(5:30:5)에 나오는 내용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레네우스는 당시에 존재하던 전통에 따라 그렇게 기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2. 이른 저작설(AD 70년대 이전)

한편 요한계시록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기록된 책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소수 있다(주 10 : T. Randell은 풀핏주석 요한계시록 서론에서 터툴리안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함께 예루살렘 파괴 이전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들은 보통 요한계시록이 네로황제의 치하(AD 54-68)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AD 70년 이전의 기록 연대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한다(주 11 : 천정웅, 요한계시록, 서울: 말씀의집, 1990, p. 4.).

어떤 학자들 가운데는 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아예 범위를 넓혀 AD 65년에서 95년 사이로 이야기하기도 한다(주 12 : Jacques Ellul, L'APOCALYPSE ARCHITECTURE EN MOUVEMEVT, 요한계시록 주석 - 움직이는 건축물, 유상현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p. 19.). 그들은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 기록 연대를 AD 70년 이전으로 보는 학자들은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이스라엘 멸망이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 모든 성경이 A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주 13 : J. A. T. Robinson, Redating the New Testament, London: SGM Press Ltd., 1976.).

반더발(Cornellius van der Waal)은 이레네우스가 연대 문제에 대하여 많은 실수를 범했음을 지적하면서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는 그 본문의 내적 증거를 통해 밝혀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주 14 : Cornellius van der Waal, Search the Scriptures, 반더발 성경연구 Ⅲ, 명종남 역, 서울: 연합, 1991, p. 600. ). 그와 같은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AD 70년대 이전으로 보고 있다.

3. 필자의 견해 / 이른 저작설

필자가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AD 70년 이전으로 보고 있다는 점 자체는 그들과 같다. 하지만 그 근거를 동일한데서 찾지는 않는다. 필자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AD 70년 이전으로 보아야 할 중대한 이유를 성경의 내증을 배경으로 한 구속사와 관련된 두 가지 역사적 측면에서 찾는다(주 15 : 요한계시록 6장 9절의 ‘제단’과 11장 1절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이라는 문구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파괴되기 전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그것 자체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4장 이후로는 환상을 통해 기록되는 내용들이므로 그것을 두고 예루살렘 성전의 현존을 증거하는 근거로 삼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는 살아있었지만 희생제물을 바치는 실체로써 제단의 의미는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 요한계시록의 기록시기를 구약의 기록과 연관된 신약의 구속사적 의미에서 찾는다. 그것은 역사상 ‘특별한 40년들’과 관련이 있다(주 16 : 필자는 구약시대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40년과, 신약시대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돌로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까지의 사도교회 시대 40년을 구속사에 있어서 ‘특별한 40년’으로 이해한다.).

AD 30년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부터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까지 40년의 의미는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이 기간을 ‘사도교회 시대’로 이해하며, 교회사에서 그후에 뒤따르는 ‘초대교회 시대’와 분명히 구분 짓는다(주 17 : 필자는 ‘사도교회 시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있었던 AD 30년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70년까지의 40년으로 보며, 그 이후부터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인 313년까지를 ‘초대교회 시대’로 본다.).

이 40년의 기간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의 때와 구속사적으로 조화되는 의미를 지니는 기간이다. 출애굽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과 광야 40년 동안의 특별계시의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영원한 해방과 그 이후 40년 동안의 특별계시의 시기와 연관된다.

AD 30년에서 70년까지의 40년은 구약의 구속사적 의미와 더불어 사도들을 통한 이적과 기사가 교회 가운데서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주 18 : 이광호, 신약신학의 구속사적, 이해, 서울: 도서출판 깔뱅, 2006, pp. 260-265, 277-280.). 그 40년이 지나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의미는 그 역할을 완성함으로써 종언(終焉)을 고하게 된다. 그것은 보편 교회와 연관된 놀라운 새로운 왕국시대를 전제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리아산 사건으로부터 계시되어 다윗, 솔로몬을 통한 예루살렘 성전 건립에 따른 의미와 함께 ‘여자의 후손’(창 3:15)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의 완결과 성취를 의미하고 있다. 이는 신약성경 계시의 완성과 함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제시된 새로운 교회시대인 천년왕국의 도래를 ‘반드시 속히 될 일’(계 1:1)로서 예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라는 역사상 중대한 분깃점인 AD 70년에 가까운 시기에 기록되었으며 교회에 주어진 완성된 신약성경의 계시 종결의 의미를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사도교회 시대 40년은 이후에 따라 오게 될 천년왕국으로서 보편교회 시대의 특별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둘째, 예루살렘 성전파괴를 앞둔 4년간의 이스라엘 민족의 시민전쟁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로마제국의 강점 하에 놓여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국가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에 직접 가담했다. 성경에 기록된 ‘열성당’(Zealots)은 민족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였으며, 예수님 역시 민족의 독립운동을 하는 자로 오인되기도 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신 외견상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점이었다.

이렇듯이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항상 국가적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것이 AD 66년 이후에 폭발하게 된 것이다. 당시 유대지역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은 곧 민족 독립을 위한 시민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이 아니라 오히려 패망을 몰고 왔을 따름이다.

결국 AD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시민전쟁이 진행 중이던 약 4년간은 ‘로마제국’이나 ‘유대민족주의자들’ 그리고 ‘기독교회’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그 4년 동안 로마제국이 기독교에 대해 어떤 우려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 주목한다.

물론 유대지역의 시민전쟁에 대해서는 로마제국의 시각과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시각, 그리고 기독교회의 시각이 서로 간 전혀 달랐다. 그와 같은 형편 가운데 로마제국은 요한을 밧모 섬으로 유배하게 된다. 로마제국이 사도 요한을 밧모 섬에 유배한 것은 유대지역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