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면에서 계약은 불신이 만든 결과다.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 대한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람은 타협하고,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약속한다는 것은 약속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동등한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있음이 전제된다. 즉, 약속을 맺는 것은 언제나 동등한 지위에 있는 양자 간 혹은 다자간의 일이다. 그러나 한쪽의 힘이 아주 강한고, 다른 쪽의 힘이 아주 약한 상태에서도 약속은 맺어진다. 이런 약속은 강한 자가 중심이 된 불평등한 약속이다. 이런 약속이 지켜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언제나 힘이 있는 쪽에게 있다.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언약이 그렇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과는 사실 언약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찾아오시어 언약을 맺으신다. 창세기15장에는 당시의 관습대로 언약을 위해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 염소와 삼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다가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창세기15:10)’한 채 벌려놓았고, 해질 때에는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창세기15:12)’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창세기15:17에서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모습을 이야기함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아브람과의 언약에 충실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약관계를 유지하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구약의 긴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의 자리에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참으시고, 언제나 새롭게 하여 언약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하시는 자리에 계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지키고 유지하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맺으신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새 언약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예레미아31:33)’는 말씀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한복음1:14)’심으로 맺어진다. 그리고 그 언약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언약의 형식이 ‘율법을 문서로 주심’에서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는 것으로 바뀐 이유는 당연히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다. 율법을 맡은 하나님의 택한 민족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적인 요구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갈라디아4:4-5)’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다시 살리신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여기에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강자이신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시고, 그의 독생자를 죽이시기 까지 인간과의 약속에 충실하시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도 ‘신실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신실함만을 요구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는 데만 관심이 있지, 목자의 음성만을 따라가는 양처럼은 살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양은 신실하게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