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교회는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주일’로 지킨다. 우리 개신교회도 자연스럽게 이 삼위일체주일을 지키고 있다. 삼위일체주일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축하하는 교회절기는 아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이 삼위일체주일을 ‘이념축일’로 부른다. 이념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념이라는 말에 나와 있듯이 구체적인 구원사건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사건에서 발생한 추상화된 이념을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교회는 여러 가지 이념축일들(삼위일체대축일, 성체성혈대축일, 예수성심축제, 그리스도왕대축일, 성가정축일)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여러 축일들 중에서 삼위일체주일만 지키면 될 것이다.
초대교회로부터 성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하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오심으로 삼위가 각각 구별되어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하심으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드님이며 경배 받으실 하나님과 같으심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장차 임하실 성령님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힘 정도가 아니라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다. 이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세례 받는 자리로 나아올 수 없다.
고대 교회는 아리우스 이단이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부인하므로 삼위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더 강조되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사도신경으로 자리잡았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인데, 이 고백은 세례문구로부터 발전해 나왔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도 없고, 사도신경도 없기 때문에 예배 때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은 유일신사상을 넘어 삼위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이단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단이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에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즉, 이단은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교회는 처음부터 삼위일체를 고백했지만 로마교회는 특정한 날을 삼위일체축일을 고정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주일마다, 아니 매일 기도를 하면서 시편을 읊고 영광송을 하기에 매일 삼위일체를 기리기 때문이었다. 삼위일체 축일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지키기 시작했다. 클루니 수도원에서는 1030년에, 시토회 수도원은 1271년에 삼위일체 축일을 도입해서 지키기 시작했다. 그 전에 삼위일체축일은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에 지키기도 했고, 대림절 전 주일에 지키기도 했다. 마침내 1334년 요한 22세 교황이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축일로 정하여 지키도록 했다.
왜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주일로 지키는 것일까? 성령께서 오셔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다는 뜻일까?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이제는 삼위일체의 비밀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부께서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성자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신 후 하늘에 오르셔서 성부께 부탁하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다.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살려주는 영’(고전 15:45)으로서 일하고 계신다. 이렇게 하여 삼위일체의 비밀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삼위(성부, 성자, 성령)를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의 말씀에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 25문)이다.
삼위일체주일에 독서하는 구약성경말씀으로는 창조기사(창1장), 이사야 선지자가 본 하늘보좌의 장면(사6장), 하나님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라는 잠언서(8장) 말씀들이다. 마지막 독서인 복음서 말씀으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세례명령(마 28:16-20), 거듭남에 관해 말씀하신 부분(요 3:1-17),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가운데로 이끄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요 16:12-15) 등이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이시다. 아타나시우스신경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이 삼위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는 삼위일체주일을 지키면서 구원의 계획과 성취와 적용을 풍성하게 맛보아야 하겠다.
안재경 목사(남양주 온생명교회) http://cafe.daum.net/osm.or.kr
<세움북스 신간> 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정요한, 세움북스, 2018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