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교회 청년들과 함께 등산을 갔다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두 세 시간을 걸었는데도 같은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링반데룽(Ringwnaderung :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고 한다. 원을 의미하는 독일어 ‘Ring’과 걷는 다는 뜻의 ‘Wanderung’ 이 합쳐진 등산 용어로 등산 도중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같은 지역만을 맴돌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폭우나 안개등의 급한 기후의 변화로 인해 주로 일어나지만, 우리같이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몸이 장기의 무게나 좌우의 신체 발육상태가 달라서 일직선으로 똑바로 걷는 것 같지만 간이나 심장 등 무거운 쪽으로 그리고 다리의 길이가 짧은 쪽으로 원을 그리며 돌게 되는 신체적인 데 이유가 있다(다음백과에서 발췌). 링데반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침착하게 높은 곳에 올라가 지형을 살피고, 내려가야 할 지점을 확인하며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유능한 산악인이라면 몰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그냥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론이 통할 리 없다. 그리고 그렇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링데반룽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링데반룽같은 상황을 멋지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도 모르고, 날씨도 변하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냥 지금까지 걸었으니까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일한 일일 것이다. 나는 우연히 길을 잘 아는 분을 만나 산에서 내려왔다.

2018년을 맞이하면서 문득 ‘링반데룽(Ringwnaderung : 환상방황(環狀彷徨))’ 상황에 있는 나를 본다. 교회를 개척할 때 유치원 다니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별로 변함없는 교회가 그렇고, 열심히 산에서 내려오려고 길을 걸은 듯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일상이 그렇다.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발전하고 있는데, 무엇엔가 갇혀 같은 곳을 맴도는 듯한 자괴감을 이길 수 없다. 답답한 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조금 전에 보았던 나무를 확인하게 되고, 그래서 느끼는 절망과 공포처럼 정신을 차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 자리에서 점점 지쳐가는 나를 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어느 목사의 ‘목사님은 변하신 게 없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느꼈던 수치스러움의 이유는 내가 링반데룽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삶에 익숙해서 위기를 쉽게 벗어난 일도 없고, 그래서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삶을 산 내가 링반데룽에 빠질 때 마다 도움은 언제나 예수님으로부터 왔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요한복음3:16)’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의 기자도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히브리서4:15)’라고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5:13-14)’라고 말씀하신다. 즉,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산다면, 예수님은 나의 친구가 되신다. 그리고 링반데룽에서 헤매는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셨다. 그리고 나는 그 예수님을 의지해서 링반데룽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았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예수님은 언제나 그렇게 말없이 내가 방황할 때마다 나와 함께하셨고, 나를 거두셨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이다.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