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고등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할 때, 끝까지 남아서 구조를 지휘해야할 선장과 항해사 등이 먼저 구조되어 배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들에게 마지막 승객 한 명까지 살려내고 배와 함께 사라져간 타이타닉호 선장 같은 고품격의 책임감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먼저 도망가다니...하긴 천안함 사태 때도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휘해야할 장교들은 모두 빠져 나오고, 불쌍한 사병과 부사관들만 죽었다. 우리 사회는 도무지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책임지는 법이 없다.  

'노크 귀순'으로 영토가 뚫리고, '천안함'으로 영해도 뚫리고, '무인기'로 영공까지 뚫렸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은 커녕 천안함에서 살아나온 장교들은 영예롭게 승진까지 했다. 세계 10위권의 국방예산에다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도 맨날 뚫리기만 한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예산타령이다. '무인기' 방어를 위해서 백억원이 넘는 저고도 감시 레이더를 도입한단다. 

책임지지 않는 관행은 이제 우리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도무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란게 없다. 부자들은 세금을 안 내려고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기업들은 망해도 기업주들은 살아남는다. 회사는 적자를 냈는데도 대주주들은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고, 가난한 사람들이 한푼 두푼 예치한 예금들도 먹고 튀는 놈이 임자다. 그러고 까지껏 일당 5억원의 강제 노역으로 버티면 된다. 

일제 치하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친일파들은 반성 한번 없이 부와 권력을 세습시키고 있다. 군부독재 하에서 수많은 민초들에게 눈물과 한숨을, 분노와 억울함을 안겨줬던 권력가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는 일이 없다. 작금의 정치인들도 자신의 치적 쌓기와 득표를 위해서라면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 때문에 몇몇 지자체는 쓸데없는 일들을 벌여 재정자립도를 크게 악화시킨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선진국이란 국민소득만 높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져야할 때 책임을 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널리 조성될 때 나라가 바로 서고 발전할 수 있다. 수많은 승객들을 태운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자기부터 살겠다고 먼저 도망가는 선장, 위기관리시스템이 정확하게 정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