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광주신학교 학생들과 선교여행을 할 때, 저녁에 북경을 떠나 강을 건너면서 본 옥수수 밭은 다음 날 아침에도 역시 계속되었다. 참 큰 땅이다. 기차 안에서 보는 이른 아침 중국의 농촌 마을은 한적하기만 했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커다란 밭을 일구는 농부 한 두 명 뿐이고, 그들 앞에는 트랙터로 해도 한나절 이상은 해야 할 만큼 커 보이는 밭이 덩그라니 놓여있다. 함께 간 학생 한 분은 그 농부들은 아마 자신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럴 것이다. 밭이랑 하나를 매도 온종일이 필요한 거대함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이 가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자연 앞에 왜소한 인간,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인식이 자연의 거대함 앞에 선 사람의 자기이해일 것이다. 이런 자기이해가 있어야 자연에 순응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자연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척박한 땅이면 그 척박함을 받아들이고, 풍요로운 땅이라면 그 풍요에 감사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바다를 삶의 근거지로 삼는 지혜가 자연 앞에 선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드러나게 된다.

‘주머니 속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편리에 맞추어 하나님을 작게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영역을 설정하고, 그런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가 ‘그 영역’ 안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제한된 능력과 제한된 지혜를 가지고 사람의 삶에 보조적인 역할만을 감당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옛날 종교인들의 생각을 적어놓은 일상과는 단절된 ‘종교서적’이 된다. 이런 생각을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성숙함’이라는 말로 합리화시킨다. 현대인은 더 이상 종교적인 비합리성에 매달리지 않는 성숙해 있다는 말이다. 성숙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른들처럼 자신의 문제를 위해 스스로의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도와달라고 기도하게 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이 말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이 땅의 모든 것을 조성하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고백이다. 이 말은 그 거대한 땅 앞에서 인간이 한계를 깨닫는 것처럼, 하나님을 묵상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의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깨닫는다. 무엇하나 은혜 아니면 가능한 것이 없음을 삶의 순간순간마다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평가하면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15:10)’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사람만이 누리게 된다.

거대한 밭 앞에서 트랙터를 생각함으로 한 나절이면 될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위대함 혹은 거대함 앞에서 ‘얼마나 벌 것인가?’를 생각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사람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에서 자기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먼저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 반면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찾는 자가 된다.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사람은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