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C. V.게오르규가 쓴 ‘25시’라는 소설에 잠수함에 있는 토끼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잠수함은 지금같이 산소를 만드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토끼를 싣고 다녔다고 한다. 토끼는 사람보다 산소에 민감하기 때문에 토끼가 산소부족으로 괴로워하면 잠수함 내에 산소가 보족하다는 의미이고, 그때 잠수함은 재빨리 물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토끼가 잠수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바이메탈이 된 것이다. 세계 이차대전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불행 속에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수용소로 끌려갔다 풀려나고 또 다시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회적 부조리에 갇힌 주인공 ‘모리츠’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게오르규는 잠수함에 산소가 없어질 때 고통을 느끼는 토끼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상황을 ‘아가미가 갑갑하다’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물이 탁해져서 물속에 산소가 줄어든 상태에서 호흡해야 하는 물고기의 생각이랄까? 어떤 면에서 아가미는 토끼같이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을 측정하는 도구일수 있기 때문에, 아가미가 답답하다는 말은 결국 그만큼 물이 혼탁해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지금까지 혼탁하고 산소가 없어 호흡이 곤란한듯해 보이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산소를 공급해왔다. 교회가 공급한 산소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알게 됐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복음은 무지를 일깨우는 ‘개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교회가 공급한 산소를 받은 곳에서는 삶의 가치가 변하고,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이 해소되고, 신분의 차별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 졌고, 교회의 많은 목사나 장로님들은 갑갑한 이 땅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고, 사회적 부조리와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는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고, 시대의 부패를 막는 소금으로 정의와 공의를 하수같이 흘려보내는 원천이었고, 그런 일들을 최전선에서 감당하는 교역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선배들은 이 땅을 밝히는 둥불 같고, 이 땅의 부패를 막는 소금 같은 삶을 살았다. 그분들은 그들에게 있는 복음으로 인해 받는 사회적인 존경을 거부하면서,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산소 제조기이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같이 공유하는 ‘산소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왕자를 태운 백마가 있었다. 사람들은 왕자를 존경하기 때문에 왕자가 지나가는 길에 엎드리어 왕자에게 존경을 표했다. 이때 왕자를 태운 백마가 자기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우쭐거렸다. 이런 것을 ‘백마 병’이라고 한단다. 교회가 백마 병에 걸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복음으로 인해 존경받아야 할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학식과 능력으로 인해 존경받는다고 생각하거나, 그리스도의 섬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회가 사회적인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아가미가 갑갑해 진다. 하지만, 우리 아가미를 더욱 갑갑하게 만드는 것은 산소 부족으로 죽으려하는 토끼를 보면서도, 무늬만 남아있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헌신을 말하는 백마 병에 걸린 우리들의 자화상 때문은 아닐까?

오성환 목사(신학포럼 빛 원장/이야기가 있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