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채색을 위해서는 흰색의 종이나 비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채색이라는 형식을 위해서는 흰색이라는 본질적인 바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탕은 형식을 제한한다. 집의 구조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동선과 생활양식을 결정하는 데, 집의 형태는 ‘흰 종이’와 같이 삶을 위한 바탕이 되고 삶의 스타일은 ‘색갈’과 같이 형식이 된다. 우리 역시 여러 가지의 바탕을 갖고 있고, 우리가 갖고 있는 바탕들은 우리의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라는 말은 life style 자체의 같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루어 나가는 바탕이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라, 말, 생각의 바탕이 같은 사람들이 ‘우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음’이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삶의 바탕을 가지고 있는 ‘우리’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바탕은 신앙고백이다. 신앙고백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바탕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내용을 사도신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고,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들 가운데 오셨음을 이야기한다. 이런 예수님의 탄생을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라디아서4:4-5)’고 이야기한다. 이 아들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렇게 ‘우리’가 되기 위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벡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신앙적 고백은 우리들을 ‘한 믿음’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바탕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바탕에 우리의 믿음은 정착된다. 그래서 성탄은 우리의 믿음과 직결되는 이야기가 된다.

요즘에는 바탕 보다는 형식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대이다. 형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탕이 갖고 있는 여유와 여백이 사라지고 현란한 색깔이 우리의 삶을 공격한다. 현대인들은 여백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찍어대어 여백을 없애버리는 문화를 만들었다. 현대의 대중문화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ready-made 문화’라고 하는 이유는 바탕색은 생각하지 않고 대중이라는 문화 구매자들의 입맛에 맞게 채색된 형식만을 팔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문화적인 요소들은 믿음의 바탕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재미와 쾌락으로 그리고 이익을 위한 대상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매년 성탄절마다 쏟아지는 각종 ‘성탄절 특집’이 점점 더 자극적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성탄절 특집의 관심이 ‘형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탄’이라는 믿음의 바탕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주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에는 ‘낮아지심과 섬김, 그리고 희생’이라는 우리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모범이 있고, 곰씹어보면 매년 새로워지는 은혜의 보고가 있다.

또 새로운 성탄을 맞이한다. 물론 성탄의 의미를 곰씹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역시 ‘우리’들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한 즐거움을 찾는다. 올해의 성탄이 자극적인 색깔로 채색된 쾌락이 아니라, 용서와 화목 그리고 사랑으로 채워지는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