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은 분명 정치권력에 의해서 생긴 결과임이 틀림없지만 공동체의 일원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학교는 순수하게 학문과 경건을 중심으로 교단이 지향하는 목회자 양성과 조국과 세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는 믿음의 일군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총회는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최대한 지원하고 기도하며 감독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고 섞여서는 안 된다.

우리 학교는 학교라는 외형적인 모습은 세계 그 어느 신학교하고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갖추었지만 실제로 내실 있는 교육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동안 강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가르쳐 온 교수들의 노고를 깊이 치하한다.

허나 한편으로 되돌아보면 과연 책임과 의무에 있어서 부끄러울 것이 하나 없이 잘 감당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신대원에서 가르쳐오고 있으면서 공동체의 한 식구로서 학내 사태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한국 그 중에 합동측 교단 소속 목회자들을 배출하는 학교의 선생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한다.

대통령 퇴진 운동과 맞물려 총장 퇴진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우리 총장의 잘못 역시 사실이라면 비난을 사기 충분한 잘못이다. 사실이라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 누군가를 처벌하려면 반드시 법률에 위반한 행위가 입증된 후에 법률에 따라서 처벌되어야 함이 상식이다. 어느 누구도 소문만으로 처벌될 수는 없다.

더욱이 헌법 12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받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총장이나 대통령이나 법의 심판이 나오기도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사람들의 요구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건덕상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당사자 자신의 권리이다. 그 권리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총장도 대통령도 대한국민 국민이다. 더욱이 총장은 그리스도인이요 우리 학교는 하나님의 법이 더 우선하는 신학교이다. 구체적인 범법 행위가 드러났을 때 그 사실에 대해서 권면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한 두 증인을 더 데리고 가서 권면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 앞에 말하여 징계를 가하는 것이 성경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전 총회장의 주장을 그대로 믿더라도 그는 이 절차를 어겼다. 그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그는 현 총장이 돈 봉투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권면하여 되돌려 주지 않았다. 그것을 곧장 검찰로 넘겼다. 이것은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라 죽이고자 하는 방법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정황은 당사자들만이 잘 알겠지만 상대를 제거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곧바로 검찰에 넘기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배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적을 제거하고자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비성경적 과정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법률에 따라서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면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아니하며 사퇴여부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대통령이나 총장의 자리, 혹은 담임목사의 자리는 사람들이 세우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세우신다고 믿는다. 모든 권세가 주께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총장이 사울 왕이 저지른 행위 그 이상보다 더 악한 죄를 범하였는가?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우리 손으로 능히 끌어내고자 함이 정당한 권리행사인가? 다윗은 충분히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가졌었지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겼다.

이번 총장 건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인가? 꼭 우리의 손으로 처단해야 하는가? 그가 총장직에 남아 있으면 학교가 거덜 나는 것인가? 그가 물러나면 학교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고 실추된 학교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보장되는가? 그의 물러남을 학수고대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전국 교회인가? 학교교수들인가? 아니면 학생들인가?

학생들은 총장 때문에 진로가 막히고 학문 연구에 지장을 받고 학교 발전이 저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교수들은 총장 때문에 자신들의 승진이 안 되고 학문연구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교수로서 학생들 지도하는 일에 엄청난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가? 총장 때문에 전국교회가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모저모를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학내 문제는 극소수의 정치 권력자들의 권력다툼에 비롯되었고 거기에 빌붙어 있는 자들의 탐욕에 의한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야욕을 마치 의로운 분노로 치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도 한 사람의 교수 요원으로 그리고 한 사람의 신자로서 학내 문제를 이렇게 보고 싶다. 분명 불의한 일이 일어났다.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 총장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에는 동의가 안 된다. 무엇보다 도덕적 청렴성을 요구받는 자리에서 학교 위상과 권익을 손상시켰으니 떠나야 한다? 일리 있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보자. 그러한 요구가 총장을 진심으로 사랑해서인가? 또는 진심으로 학교를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그의 퇴임이 행여나 나 자신의 권익 신장을 더 꾀하는 발판이 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 의를 과시하고 싶은 욕심의 발로인가? 이 시대의 다수의 함성이 하늘의 뜻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고 싶은 것 때문인가?

수년 전에 총장 선거에 무려 16번이나 투표한 것이 있었다. 누구나 다 금권선거였음을 알고 있다. 그 때 낙망하신 분은 지금까지 회복이 안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그때 투표인단에게 돈을 뿌린 것은 지금 총장이 건넸다는 2천만 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때 그렇게 해서 당선된 사람이나 낙선된 사람을 향해 도덕적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으니 퇴임하라고 대자보 하나라도 붙였는가? 그것은 교수들끼리의 싸움이었으니 무방한 일이었는가?

특정한 교회에서 특정인들만 거액의 사례금을 받은 것에 대한 부분은 그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니 지나칠 문제인 것인가? 교직원들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교 재정이 부족하니 그 부분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자신의 월급을 도로 내놓거나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희사한 분들이 있는가? 정말 그들은 학교를 사랑하는가?

교직원들로서 직업적 사명에만 충실하게 감당할 뿐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다. 교수는 지식 전달업무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세계 열방에 나가서 헌신할 하나님이 사람들을 길러내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자들이다. 그들의 영혼과 사역 준비에 부족하지 않도록 세심히 돌봐야 한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졸업을 한 후에도 모교를 사랑하여 계속해서 후보자들을 보내고 자신들의 위치가 여유가 있게 된다면 적극 학교를 지원하여 후배들이 돈 걱정하지 아니하고 최정예 훈련을 받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야 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강의실에서 벌어진 학교에 대한 비방과 조소는 신학교에 대하여 무관심 무정한 목회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전국 교회 백만인 기도후원자 모집에 십여 년 이상을 캠페인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1/5 정도뿐이라고 한다. 절대다수가 동참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을 구할 때 좋은 분들을 청빙하려고 애쓴다.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도 지원도 없으면서 단물만 빼먹고자 하는 교회들은 아닌가?

물론 신학교가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교육이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우리 교단에서 목사가 되려면 신대원을 나오지 않고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단지 자격증 따기 위해 다니는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학교를 사랑하는 작은 마음으로 전국 교회에 제언한다.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어려운 이 시점에서는 더욱 더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교수들은 학교의 어려움에 책임을 지고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애교(愛校)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교수들이 진정으로 학교를 사랑한다면 재능 기부와 동싱에 물질적 기부에도 참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은퇴한 교수들이 퇴직금 중에서 장학금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니 재임 중에라도 거액의 장학금이나 발전 기금을 기부하였다는 것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가끔은 가난한 신학생들 식대라도 지불하고 돕는 일들은 하고 있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다.

전국의 목회자들이 종종 학교를 방문하여 전교생에게 점심을 대접하거나, 교육전도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맥만기도운동에 동참하여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 또한 신대원 총동창회에서는 수년동안 양복물려주기 행사를 통해서 후배 사랑의 본을 보여준것도 귀한 전통이다. 전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지금까지해 온 총신에 대한 사랑을 갑절로 업그레이드시켜 물질을 기부하는 풍토가 조성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신자들도 종종 세속 학교에 기증하는 소식들이 있는데 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 일군을 양육하는 일에는 더 많은 재능 기부와 물질 기부 및 각종 기증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 그런 소식이 기관지에도 실려 서로 서로 격려하면서 총신 살리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으면 좋겠다.

전국교회는 학교에 정치세력이 똬리 틀 기회를 가지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총장이 되고자 할 교수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급을 장학금으로 내놓아야 한다. 연봉 일 달러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전국 교회 앞에 학교를 사랑하고 지원해 달라는 기금 모금을 위해서 앞장 서야 한다.

정부로부터 보조를 받는 교수들이 많아지게 하지 말고 전국 교회가 책임지고 지원하여 연구에 몰두하며 가르침에 높은 열매를 맺도록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논문 쓰기 위한 연구 실적이 아니라 조국 교회를 살리는 일을 위한 연구가 집중되도록 교회가 지원해야 한다. 특히 목사 후보생들이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교수 은퇴식도 총회석상에서 가져야 한다. 그것이 전국교회가 직영하는 교단의 신학교임을 그리고 임명받는 신임교수들도 더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퇴임하는 교수들에게 총회가 노고에 대한 인정과 격려의 박수를 친다면 총회 직영 교단 신학교에서의 교수 사역이 세상 그 어디에서보다 영광스러운 직임임을 인식하며 그 수고를 알아줌에 가슴 벅찬 감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총회는 노 교수들의 지식과 지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해외 선교지에서 신학훈련을 시키는 일들과 국내 신도시 개척할 때 파송을 받아 목회로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는 것도 교회의 영적 성숙과 영향력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