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순례길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그가 택한 순례길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곱의 무덤이 있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야곱의 스페인 식 이름이 산티아고이고, 1189년 로마카돌릭의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했다고 한다. 후에 1993년에 유네스코에서는 산티아고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 길를 하고 있다)로 가는 약 800㎞ 정도의 길이다. 간암 말기 환자인 이분은 기도하면서 성지순례를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3-6개월밖에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인 자신이 어떻게 800㎞를 걷겠는가라는 질문을 주님께 던졌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같이 걷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그는 에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몇 개월간의 순례 길을 혼자 걸었고, 자신의 순례 길에서 겪은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냈다. 그의 책은 순례 길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례 길을 걸으면서 무엇인가 깊은 사색을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다. 그냥 누구를 만났고, 누구의 도움을 받았고 또 갈림길에서 주님께 기도하지 않아서 고생했고, 그 고생 가운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가득하다. 추운 날 따듯한 잠자리에 감사기도를 하고, 여인숙 주인이 특별히 배려해준 토스트와 차에 감사하고, 외로운 길에서 만난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주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안에서만 산다.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 놓아도 전도서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을 시편의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편90:10)’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생길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산 야곱은 애굽의 왕 바로를 만나서 자신의 삶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47:9)’라고 말한다. 야곱의 삶은 정말 험악한 세월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삶을 시편 기자는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다. 아브라함처럼 혹은 그의 아버지 이삭처럼 야곱은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을 살았다. 시편의 기자도수고와 슬픔으로 신속히 날아가는 인생을 살면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시편90:14-16)’라고 노래한다.

그는 순례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의 동행함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읽었다고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걸아가면서 갈래 길이 나오면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옳은가를 기도함으로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발걸음을 옮길 때 평안과 기쁨이 있었다고 했다. 때로 기도하지 않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갈 때는 엄청 고생했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겪게 되는 위기 때마다 누군가가 와서 자신을 도와주었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에 둔 길이고, 슬픔과 수고뿐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주어진 길을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매형이다. 매형은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의 의미를 전해주고, 하나님 곁으로 갔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