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에 다다른 사회
지난 달 25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사법시험존치를 원하는 고시생들의 집회가 있었다. 그들은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로 전락할 수 있는 로스쿨 제도의 부정적인 면과 기존의 사법시험의 존속을 외쳤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음서제에 대해서 말하면서, 2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자제 중에서 한 명에서 음서진출 자격을 주었는데, 그 신분상승이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관직을 임명할 때에도 ‘음(蔭)’자를 써서 정식 과거 출신이 아니라 음서출신이라는 것을 밝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보아 정상적인 관직진출을 희망하였다고 한다. 물론 조선후기에 당파와 세도정치로 인하여 문란하여 졌지만, 정도전이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그러한 제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정상적인 음서제란 건전한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고 운영되는 과정 가운데, 보조적인 장치와 배려로 인식된다. 조선이라는 사회가 능력 위주의 인물발탁이라는 제도로 운영유지 되어가는 가운데, 2품 이상의 고위관료들의 경험에서 더해질 수 있는 노하우도 보조적으로 수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은 고위공직자, 재력가, 기득권 세력들이 독점한 기회와 자리를 자기 자녀들에게 그대로 상속하겠다는 배타적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교육부의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가 국민들을 ‘개와 돼지’로 말한 것은, 이미 ‘보이지 않은 신분제도’와 지배층의 ‘귀족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일명 ‘흑수저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될 때, 그것이 극화되면 계급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이덕일은 강연을 위해 만난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리 사회가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하는 판단을 하였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아무 희망이 없고, 불공정한 사회라는 피해의식을 가진 대중을 선동했다. “지배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부들부들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에게 잃을 것은 쇠사슬 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급진적인 선동이 20세기 역사를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은 통치 초기부터 개방적인 인재등용을 시행하였다. 나폴레옹은 그의 장군들 중의 대부분을 “진흙에서” 건졌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재능있는 인재들을 등용하였다.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에서 봉건적인 특권이 사라졌으며, 이때부터 사회계급과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가 수여되기 시작하였다. 공을 세운 사람이면, 귀족 뿐만이 아니라, 평민들도 최고훈장을 받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은 교육제도에 있어서도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개탄한 것처럼, 부자의 자식들은 돈을 낭비하고 빈자의 자식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없애기 위하여 고등학교 격인 “리세(lycee)”를 모두에게 개방하였으며, 과학대학 격인 폴리테크니크를 설립하여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실재로 나폴레옹의 고위 관료 다수가 비천한 가문의 출신이었다.
19세기 유럽의 개혁가들이 원하는 세상은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엘리트와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불평등한 사회, 진정한 귀족제였다. 아버지의 신분과 가문의 신분이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 대물림되는 가짜 귀족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능력있는 사람이 귀족이 되는 능력위주의 사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가진 소유와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소유와 기회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기회나 진출조차도 막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다. 아무리 일해도 ‘개. 돼지’의 삶, 즉 먹고 종족 번식하는 짐승적 차원의 삶을 면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는 절망의 사회이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희망이 저 새마을 운동 시대의 구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