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은 야곱과 그 가정이 가나안의 세겜에 정착하면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다. 디나가 토착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복수로 시므온과 레위가 거짓 조약을 맺어 세겜의 남자들을 도륙하고 재산을 노략한 일이다. 이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후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제공해 준다. 여기 나오는 중요한 개념들은 더럽힘, 사악함, 할례와 비할례, 분노와 슬픔 그리고 기만이다. 할례 받지 않은 가나안 백성들의 부도덕함이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더럽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가나안 사람들과의 통합은 필연적으로 더럽혀짐을 초래하게 되어 있다. 디나를 강간한 후에도 하몰과 세겜은 어떤 잘못에 대한 뉘우침 보다는 그녀를 돈으로 사보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부도덕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야곱이 보이는 반응은 이례적이다. 야곱은 흥분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는다. 만일 디나가 라헬의 딸이었을지라도 야곱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만큼 말이다. 야곱은 족장으로서 자신의 리더십을 포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자의 전형적인 비겁한 전유물, 아담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분노함으로써 정당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야곱의 아들들이었다(7). 결국 하몰과의 협상은 야곱 보다는 야곱의 아들들이 맡게 되고, 미성숙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라는 종교적 언약의 표시로 그들을 속이고 결국 세겜 남자들을 도륙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서 저질러진 이 복수극은 비록 잘못된 일에 대한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런 것은 언약 백성 공동체의 믿음을 더럽히는 것이다. 하몰과 세겜이 자기 성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면서 이중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라는 종교적 의식을 이용하여 거짓말을 하고 도륙을 한 것은 언약 백성들에게 합당한 태도는 아니다. 결국 이 사건은 시므온과 레위를 장자의 서열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통해서 그것이 간음이든(레 20:5; 민 25), 통혼이든(레 18:24; 신 7:1~5) 혹은 계약이든 그 어떤 방법으로도 가증한 가나안 족속과 함께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배웠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그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했다. 오늘날 불신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이 교훈은 명백하게 중요하다.
3. 이 외에도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영적 지도자가 이교도의 더럽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단호하게 행동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미성숙한 이들은 오도된 열정으로 언약을 모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악과 세상의 더럽힘에 대해 정당하고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성숙한 지도자들은 단호하게 행동할 책임이 있다. 무법이나 불법한 행동을 통해 악을 멸하거나 징벌하려는 시도가 의로운 분노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의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정의를 추구하고 악을 대적해야 한다.
4. 본문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적절하다. 오늘날의 교회가 바로 가나안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더럽힘을 당하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야곱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지는 않는가? 야곱의 죄는 가나안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가려고 한 동기의 문제다. 그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분을 내면서 이제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책망한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동기를 가질 때 타락한다. 아니, 오늘날의 교회는 이미 그 면에서 세상에게 강간을 당했고 더럽힘을 당했으며 강간을 당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창녀와 같이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31)! 누가 과연 이런 형국에 처한 교회를 바라보면서 정당한 분노를 합당하게 표출할 것이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인가? 미성숙한 분노의 폭발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말이다. 오늘날 야곱의 죄에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5. “하나님 아버지, 세상 앞에서 더럽힘을 당하는 것과 같은 교회의 모습을 보며 슬퍼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야곱의 침묵도 아니고, 시므온과 레위의 미성숙한 분노의 분출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합당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향하여 분노하고 이 세상을 대하여 싸우는 믿음과 지혜, 그리고 성숙함을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