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를 이야기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보통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는 역사(HIstorie)가 있고, 역사적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역사(geschichte)가 있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적 의미의 바탕이 된다. 한 가지의 역사적 사실은 여러 가지의 생각으로 인해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역사적 의미도 명확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어떤 역사에 대한 생각을 역사관(view of the history)이라고 말한다. 토인비같은 사람은 ‘도전과 응전’으로 역사를 보기도 한다. 계급과 계급의 투쟁을 바탕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도 있고, 막스나 레니 같은 사람들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와의 갈등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경제주체들의 갈등으로, 어떤 이들은 사회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역사를 보기도 한다.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에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발전을 위해 과거의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가운데 역사 안에는 ‘우연’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여러 가지 논리적인 흐름을 갖고 살펴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그 정도로 높았는지...? 그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우연이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우연’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야기한다.

2. 기독교적 역사이해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함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을 구속사라고 한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류의 삶에 찾아오시는 일, 그것이 역사라는 말이고, 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룻기에 보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찾아온 룻이 ‘이삭줍기’를 위해 집을 나오는 이야기가 2장에 나온다. 놀라운 것은 룻이 보아스의 밭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룻기에서는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3절)’라고 말한다. 여기서 룻기의 저자도 역시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간 ‘우연’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우연히’라는 말을 사용한다. 즉, 독자들에게 룻이 보아스의 밭으로 들어간 것은 룻의 입장에서는 정말‘우연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 특별히 자신의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우연’을 일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신비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우연’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즉 이 섭리를 바탕으로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역사관을 우리는 가졌고, 우리의 역사관을 구속사적인 역사관이라고 말한다.

구속사적인 역사관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전제된 역사관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 전제된 역사관이다. 그래서 이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나오게 된 것이 문명세계에 대한 환멸이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임을 알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우리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라함과 같은 응답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다는 생각이 바로 구속사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된다. 

3.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삶에서 섬세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 이래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무엘의 이야기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들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패했다는 말을 듣고 사사 엘리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었다. 엘리가 살았을 때도 사무엘이 하는 말은 어느 것 하나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기(사무엘 상3:19-4:1) 때문에 사무엘은 엘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빼앗겼던 언약궤가 돌아온 이후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사무엘7:3)’라고 말하면서 미스바에서 성회를 연다. 이들은 모여 온종일 기도했고, 회개했는데, 이때 불레셋 사람들이 미스바까지 쳐들어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사무엘은 어린 양을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블레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패하여 벧엘 아래까지 밀려 도망한다. 그리고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취하여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12절)’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백한다.

4.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고백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우리도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2015년을 이렇게 감당한 것 같이 우리에게 주신 2016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그 하나님을 온전하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