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골 칼럼] 두 술꾼

주일 예배 후에 정기 제직회로 모임을 갖고 2층 식당으로 갔다. 먼저 식사하신 할머니 두 분이 2만원을 주시며 필리핀 구제 헌금이라 하셨다. 동참하는 마음이 아름다웠다. 한 분은 한파에 고물 주워 모은 돈이었고, 또 한 분은 구청에서 받은 생계비로 두 렙돈의 과부 돈이었다. 사실, 할머니 주머니에 돈 있을 때 가장 쓰고 싶은 곳이 약한 자식 돕는 일이다. 그래서 K 할머니에게 다음 날, 담 안의 아들 면회를 가자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날이 추워 걱정했는데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월요일 첫 면회를 신청하면 기다림이 없기에 일찍 서둘러 갔다. 기결수에게 찾아 온 사람은 많지 않다.‘지 동구간은 애미 맘과 달라 왜? 자꾸 가냐 한디, 안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하셨다. 핸드폰을 잠금 서랍에 넣고 면회실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항상“아이, 잘 살았냐!”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잊지 못한다. 그 아들은 결혼 안하고 엄마와 50년 가까이 살았다. 그래도‘자식은 봐도 뉘가 안 난다’는 속담이 실감 났다.

아들에게 귀를 댔다.‘한 방에 8명이 생활합니다. 불편하지만 잘 적응하고 삽니다. 교회도 꼭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2년 6개월 동안 모범수로 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터득했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삶을 평가하여 편의를 제공합니다. 맡겨진 일을 하고 인정받아 한 달에 두 번 전화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3분 통화인데 한 번은 막내에게, 한 번은 어머니에게 전화할 생각입니다.’어머니가 형님 말을 꺼내자 표정이 굳었다. 아직까지 동생 면회를 안 한 일이 어려운 관계와 사정이 있어 보였다. 15분 면회 제한 시간은 노모에게 늘 부족하였다. 어머니 월세 걱정한 아들은 자리에 일어서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계셨다. 나에게 5만원을 주시며 영치금으로 넣게 하셨다. 아들이 돈을 안 쓰는지 잔액이 있음을 전하자 할머니는 술 안마시면 생활력도 강하고 정도 많은데 술이 원수라고 했다. 확정 판결을 받고 타지로 이감 시킬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일감을 맡은 이상 광주에서 마칠 것 같다. 사실은 교회 앞 골목 살 때는 자주 뵙지 못했다. 그 분은 날 보면 부담스러운지 피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갈 때마다 그가 깨닫고 변하는 모습을 보면 사역에 대한 기쁨이 있다.

삼일 후, 알콜 중독으로 입원한 S님(38세)이 6개월 만에 외출하였다. 오후에 병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도움을 청했다. 전화 할 사람은 목사님뿐이란다.“목사님! 사실 냉장고에 술 4병 있어도 먹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내일 근로자 대기실에 나갈 생각입니다. 좋은 세상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한이 많습니다. 정신 분열증 환자들(15명)과 함께 지냄이 고통스럽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 들어간 것 죽기보다 싫습니다. 매월 40만원 내고 편한 생활이 아닙니다. 만약 약속 안 지키면 엄마는 전화도 못하고 담배도 못 피우는 곳(무안, 정읍)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미치겠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정식 외출이라 강제 구인은 못하지만 두렵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목사님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했다.

그는 말 뿐이지 항상 날 이용하여 엄마에게 미움을 샀다. 난 S님에게 병원과 약속은 지켜라. 신뢰를 쌓아야 자주 나올 수 있다고 일렀다. 하지만 아들이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짠한 마음에 며칠을 용납하였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아들을 너무 몰아 세워 사고 친다고 풀어 주었다. 아버지의 마음 약함을 이용한 그는 홀가분한지‘목사님! 주일에 교회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완강하셨다. 늘 받아 줘서 사고 친다고 냉정하게 대했다.‘아직은 풀어 줄 때가 아니다’며 일도 안 시켰다. 그 날 아들을 심하게 때리며‘병원 들어가라’고 보냈다.

그런데 새벽에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귀원을 미루고 밤새 술 마시고 주거 침입 죄로 걸렸다. 수습은 아버지 몫이었다. 조서 받고 서류 제출하여 입원시켰다. 어떤 상황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빠는 자존심 상해 자식의 약점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아빠로 인해 사단(事端)이 났기에 하마터면 수감될 뻔했다. 아무튼 S님은 엄마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안겼다. 그래도 10년 세월을 보내며 한 가지 변할 것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6개월 동안 전화, 문병을 사절 시켰다. 결국 알콜 문제가 아니라 정신 문제라 진단하고 홀로 세우기 위해 가족은 외면하기로 했다. 포기하고 물러섰다. 그 만큼 그로 인한 식구들의 고통이 컸다. 천벌 받을지 모르지만 아무 때나 죽기를 원했다. 하지만 쥐구멍이라도 열어 놓아야 한다며 내게 면회할 길을 터 주었다. 난 이제 가족 틈을 메워야 한다. 변방에 있는 병원이지만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지도록 S님을 끌어 앉으리라. 고집 버리고 말씀을 깨달으면 좋은데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못 고칠 사람이 없으심을 믿는다.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